연재6:
회심(回心), 무소유의 명상작업
-법정(法頂)스님의 『무소유』를 중심으로
Ⅰ. 머리말
Ⅱ. 소유관념
1. 소유시대에 대한 비판적 저항
2. 소유와 무소유의 개념
Ⅲ. 무소유의 명상
1. 회심(回心)의 명상작업
2. 무소유와 자비
Ⅳ.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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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무소유 명상
소유가 물건과 같은 외적인 대상이 아니고 사회적인 맥락과 더불어서 심리적인 ‘집착’이고 ‘소유의 관념’이라고 규정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소유적 집착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하는 대안적 관점을 요구하게 된다.
무소유가 단순한 사상이나 지적인 앎으로만 머물지 않고 일상의 삶에서 실천할 과제라고 한다면, ‘무소유’는 사상이라기보다는 현대 자본사회의 소유집착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명상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필자는 ‘무소유’를 철학적 사상이나 수필 문학적 수사에 머물지 말고, 현대 문명에 의해서 강화된 소유에 대한 집착을 치유의 방법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무소유』에서 찾아내 ‘무소유 명상’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1. 회심(回心)의 명상작업
앞에서 물건 자체와 물건에 대한 소유 관념을 구분하였다. 그런데 과연 물건을 소유한다는 행위와 그 물건에 대한 소유 관념은 엄격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 일상에서 보면 갖고 싶은 귀한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곧 소유 관념이 되고, 그것은 그대로 ‘집착’이고 ‘얽매임’이 아닌가?
물론 『금강경』에서 말하는 ‘응당 머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낸다(應無所住而生其心)면,’ 가능하다. 곧 소유하지만 소유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난 이후로 지속적으로 물건을 소유하는 문화 현상에 길들어져 있고, '나의 것'이란 소유관념에 갇혀있기에, 쉽지가 않다.
다시 말하면 ‘소유’로부터 ‘무소유’에로 방향을 트는 어떤 수행작업이 필요하다. 왜냐면 거대한 소유 문명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어도, 적어도 개인적인 관념이나 의식은 바꿀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소유』에서는 그것을 찾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법정(法頂)은 이것을 ‘회심(回心)의 작업’이라고 호칭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으면 마음까지 잃는 이중의 손해를 치르게 된다. 이런 경우 집착의 얽힘에서 벗어나 한 생각을 돌이키는 회심의 작업은 정신 위생상 마땅히 있음 직한 일이다. (본래무일물/경향신문, 1970. 5.)"
소유로 인하여 생겨난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회심’이 필요하다. 한 생각을 돌이키는 작업, 이것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회심(回心)의 작업’을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가 필요하다. 이것과 관련된 직접적 주제는 이하 ‘회심기(回心記)’에서 매우 적절한 사례를 찾을 수가 있다.
"3년 전,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절의 경내지(境內地)가 종단(宗團)의 몇몇 사무승(事務僧)들의 농간에 의해 팔렸을 때, 나는 분한 생각 때문에 며칠 동안 잠조차 이룰 수 없었다. 전체 종단의 여론을 무시하고 몇몇이서 은밀히 강행해버린 처사며,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눈앞에서 넘어져 갈 때,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도저가 산을 헐어 뭉갤 때, 정말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회심기/세대, 1972.12.)"
아마도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 같다. 사찰의 땅이 개발업자에게 팔려가고, 그로 인한 실망과 고통은 충분하게 이해가 된다. 필자 역시 이런 옛날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분명 ‘주변에 모든 것들이 원망스럽고 저주가 일어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