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앓을 만큼 앓다가 낫기를 바랄 뿐. 우리는 철저하게 무소유였다. 그는 헛소리하는 나를 밤 세워 간호했다. 다음 날 아랫마을에 간다고 하고 아주 늦게 돌아와 약사발을 들고 들어왔다. 그의 헌신적인 정성에 나는 어린애처럼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장장 80리 길을 걸어서 다녀온 것이다. 그는 한 푼도 없는 처지라, 탁발하였으리라. 그 돈으로 약을 지어왔을 것이다. 머나먼 밤길을 걸어와 약을 달였던것이다. 자비(慈悲)가 무엇인지를 나는 평생 처음 온 신심으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그토록 간절한 정성에 낫지 않을 병이 어디 있을까. 다음날로 나는 기동하게 되었다.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行)’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잊을 수 없는 사람/신동아, 1970.4.)"
"편지를 들고 더벅머리 학생이 노승을 찾아왔다. 사연인즉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편지를 보고 노승은 말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물을 떠다 주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냈다. 산에서 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꺽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던 아름드리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그 하얀 눈에 꺽이고 마는 것이다. 살인귀(殺人鬼) 앙굴리마알라를 귀의(歸依)시킨 것은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慈悲)였다.(설해목/불교신문, 1968. 4.)"
겨울 안거가 끝나는 해제절(解制節)을 앞두고 시름시름 아픈 법정을 도반이 정성스럽게 간호하여 주었던 것이나, 더벅머리 학생에게 밥을 지어주고 발을 씻을 따뜻한 대야 물을 가져다준 노승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자비가 무엇인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이해’가 아니고 ‘경험’이다.
자비는 자비로서 경험된다.
법정스님에게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니 잊혀지지 않는 얼굴’, ‘자비의 화신인 도반(수현 스님)’을 만난 점은 스승이신 효봉 선사 다음으로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다. 마찬가지로 더벅머리 학생은 저녁을 지어주고, 따뜻한 물로 발을 씻게 해준 노스님을 만난 게 더없이 기쁜 행운이었을 것이다.
‘불교의 사회적인 실천이 자비이다. 자비(慈悲)의 개념은 자(慈)는 기쁨을 주는 것이고, 비(悲)는 고통을 뽑아주는 것이다(불교의 평화관/대학불연보, 1971.6.).’
(인경, 2017. 이런 자비 개념은 대승불교의 전형적인 해석이다. 이것은 說一切有部의 논서인 『阿毘達磨發智論』(T26, p.1010c, “思惟何等入慈定 答與有情樂 思惟何等入悲定 答拔有情苦”)과 『阿毘達磨大毘婆沙論』(T27, p.159b., “問何故名大悲 大悲是何義 答拔濟有情 增上苦難 故名大悲 復次捨 大安樂 救大苦難故名”)에서 비롯되었고, 중국 화엄에 깊게 영향을 미쳤다. 華嚴探玄記(T35, p.301c.), “問上文云 慈與樂悲拔苦 何故與此不同耶.”)
위의 사례는 자비가 교리적 설명이 아니고, 사상적인 논의가 아님을 분명하게 알게 한다. 『무소유』에서 법정은 이것을 고집스럽던 꿋꿋한 나무가 하얀 눈에 꺽이는 것에 비유하고, 혹은 반들반들한 바닷가의 돌맹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것은 부드럽고 따뜻한 물결로 거친 돌들이 다듬어지면서 둥글둥글하게 변모한 것이지, 그것들은 위엄이나 권위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고집스러운 강함을 이기는 게 바로 부드러운 ‘자비’였다는 말이다.